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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빠 diary] 이제 어린이가 아닌 너, 앞으로 어쩌지?

by 꿀팁 MOARA 202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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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새해가 벌써 한 달이나 지나버렸네. 아빠나이정도되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고들 하는데, 정말 요즘엔 이 말이 그렇게 실감 나게 생생할 수가 없다. 쏜살은 양반이고 무슨 초음속 미사일 가듯 휙 지나가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 어린이가 아닌 너를 오늘 확인하고 나서, 방금 잠든 너를 보고 아빠가 괜히 멜랑꼴리 해져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시원섭섭한 지금 아빠 느낌 나중에 돌아보면 너랑 소소하게 추억할 얘깃거리가 될 것 같아 떠오르는 대로 몇 자 적는다. 

 

네가 벌써?

금요일이라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와서 문을 열었더니 뒷정리 잘 안 해놨다고 마구 혼나고 있는 너. 백번 말하면 한 번쯤 듣는 이 정리 못하는 버릇은 아빠를 빼다 박았기에 뭐라 혼내기도 힘들고 참 미안하면서도 "어찌 이렇게 못난 건 쏙 빼닮고 그나마 아빠한테 있는 좋은 것(힘들어도 참고 버티기, 힘들어도 밝게 생각하기 등등)은 안배우나 몰라"하는 서운함도 든다. 퇴근하자마자 냉랭한 분위기가 어색해 작은방으로 들어가 바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엄마랑 너는 안 보이고 식탁에 웬 종이 한 장이 눈에 띈다.

 

'중학교 입학 배정 통지서'

 

 

잠시 멍 했다. 우편함에 손을 넣었는데 수신처가 잘못 지정된 반송 편지를 보는 느낌이랄까. 서먹서먹하고 어색하고 입안이 까끌까끌한 불편한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나이도 차고 초등학교 6년 큰 문제없이 착하게 잘 마친 너라서 당연히 한 걸음씩 커나가야 하는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왜 막상 중학교 간다는 통지서를 보니 이렇게 이질감이 드는 걸까? 한동안 이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에 기분이 좀 그래서 멍하니 있다가 오랜만에 창고 안에 처박아 놓았던 유통기한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는 술병을 꺼내 한잔 따랐다. 다행히 아빠가 반잔이상 마실 때까지 엄마가 들어오지 않았네. 일 년에 많아야 5번 정도 술을 마실만큼 술에 약한데, 그런데도 술을 마실 때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는 아빠의 캐릭터를 잘 알기에, 아빠가 술을 마시고 들어가거나 술을 마시려고 폼을 잡으면, 눈으로는 잔소리를 마구 쏘아대지만 아무 말 없이 넘어가주던 엄마였기에, 오늘은 오래간만에 니 공부책상에 앉아 홀짝홀짝 술을 마시며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아빠 기분을 남겨본다. 

 

 

아들, 배우가 되겠다고?

어려서부터 엄마아빠가 드라마 보고있으면 옆에 꼭 끼어들어와서 숙제는 안 하고 같이 TV만 주야장천 보던 너여서 그랬는지, 어린 나이에 공부로 스트레스 주지 말아야겠다는 엄마와의 합의된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는지, 네가 엄마아빠 사이에서 같이 TV화면을 보며 집중 안되게 계속 질문을 걸어오면 그냥 TV좀 보자며 핀잔을 주는 정도 외에는 네가 TV 보는걸 그다지 말린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니 목표를 배우로 정했다고 말하는 횟수가 꽤 는 것 같다. 한번 관심 가지는 건 쉽게 하면서,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곳에 꽂히던 너였기에, 특출 나게 잘생기지도 않고 키도 크지 않고, 그렇다고 카메오처럼 독특한 이미지도 아닌 딱 아빠보다는 나은 정도의 평범한 외모인 네가 배우 얘기를 계속할 때 아빠는 솔직히 이 목표도 어릴 때 잠깐 지나가는 화려한 외모에 대한 동경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 정도로 아빠는 우리 아들이 미래의 먹거리라는 문제로 목표를 정하지 않고 기분이 동해서든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서든 네 마음이 시키는 목표를 정한 것에 그저 훈훈했다. 그런데, 

 

그런 네가 벌써 중학생이라고?

 

그랬던 네가 벌써 중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니, 아빠가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왜 그런 건지는 아빠도 잘 모르겠다. 그저 아빠보다만 잘 살아줬으면 하는 마음만 있었지 너를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아빠가 뭘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적이 거의 없는 아빠였기에, 막상 네가 조금 있으면 고등학교 대학교 가고 군대 가고 졸업해서 너만의 독립된 인생을 살고 있을 그 십여 년간의 미래가 휙 지나가면서 남긴 막연한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아빠가 많이 미안하다. 다른 집은 엄마랑 아빠랑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떻게 교육시켜서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그에 맞게 준비가 될 수 있도록 계획하고 격려하고 확인해주고 한다던데, 아빠는 그런 쪽에서는 통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아빠가 그런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라 변명하며 넘어가련다. 

어쨌든, 이제 더이상 네가 어린이가 아니라는 짧고 굵은 '중학교'라는 세 글자를 보고 나니, 품 안에 너를 더 이상 안아서는 안 될 것 같고, 머리 쓰다듬어주면 안될 것 같고, 잠자려고 누운 니 앞에서 유머해도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너를 좀 더 진지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인 것 같다. 너는 이제 중학생이니까. 너는 이제 하루하루 공부에 치여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문득 인생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아빠한테 반항하고픈 생각까지 하게 될 나이가 되었으니까. 그만큼 너의 마음의 공간이 베란다 확장하듯 넓어졌을 테니까. 그래서. 그래서 너를 이제 어린이로 대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확 들었다. 

 

그랬더니 울적하네 아들

그 생각이 들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불금에 너희들 재우고 혼자 보내는 이 시간에 평일에 참고 꾹꾹 눌러놨던 각종 망상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와서인지, 왠지 너를 이제 어엿한 학생으로 대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울적해졌다. 그냥 너는 아빠옆에 계속 철없는 아이로 남아있으리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네가 아주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아주 당연한 상징을 발견했는데도 오히려 먼저 드는 생각이 이 당혹감 이라니 아빠도 도통 이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 거 보면 아빠는 정말 아빠 될 준비가 안되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 이제라도 보통의 다른 아빠들처럼 아빠도 너를 어엿한 청소년으로 대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러니,

 

하나만 부탁하자

아들. 이제 교복입고 폼도 잡고, 그러다가도 니 삶의 정체성을 찾느라 이유 없이 화도 나고 이유 없이 울적해지기도 할 것 같은 우리 아들. 하나만 부탁하자. 

 

'힘들면 아빠한테 힘들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아빠는 너를 어엿한 청소년으로 대해주는 방법은 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찌 보면 너를 더 방관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거기에 미칠 때쯤 이제 네가 너의 고민은 너 혼자만 끙끙 앓고 있을 모습을 떠올려 봤다.  그래서 그런지 울적해지는구나. 그러니 아빠가 부탁하나만 하자. 니가 나이를 얼마나 더 먹든, 불현듯 뭐가 뭔지 모를 때에는, 내일 어떤 기분으로 일어나야 할지, 당장 이 지겹고도 지겨운 "공부해서 잘 먹고 잘살라고 하는 얘기다"로 끝나는 아빠의 잔소리를 어떻게 들어주어야 할지 답이 안 나올 때는, 그때는 아빠한테 그냥 툭 한번 털어놔주렴.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아빠도 나름 귀여움 받고 자란 터라 너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명답을 주리라는 확답은 못하겠다. 그래도 아빠는 너만 할 때 어땠는지 얘기해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걸 시작으로 너랑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너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고 천진난만해지는 너를 볼 수만 있다면 아빠의 어떤 게으름과 치부도 다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아들아, 다시한번 부탁하건대, 힘들면 아빠한테 와서 '아빠는 이럴 때 어떻게 이겨냈어?'하고 물어봐 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빠가 30년을 먼저 태어난 인생 선배로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음에서 떠오르는 조언을 아낌없이 너에게 던져주마. 그걸로 너와 내가 다른 무뚝뚝한 부자지간과는 달리 달달한 친구같이 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아빠가 아빠의 아빠를 보며 '나는 아빠보다 잘 살거야'라고 혼자 괜히 어른인 척, 복수심에 불타는 척하면서 실제로 행동은 안 하고 안절부절못했던 사람이라는 것도 얘기해 주마. 

그래서 너도 아빠처럼 그저 깨어져도 좋고 넘어져도 좋은 대부분의 사람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싶구나.  그래서 너도 얼마든지 고민하고 불안해도 좋은 나이라고,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실패라는 단어를 벌써 마음에 담아둘 나이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그럼 아빠는 참 행복할 것 같다. 그럼 너랑 아빠랑 오래오래 친구먹고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절대 혼자 쫄지마. 넌 벌써 아빠의 곱절이상 잘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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