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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이야기

[아들아빠 diary] 나와 발 크기가 같아진 너

by 꿀팁 MOARA 2023.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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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오늘 너랑 아빠랑 손, 발 크기가 같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너 새 신발 주문하느라 발을 대 봤더니 아빠랑 딱 같다니. 255미리. 이제 갓 중학생이 된 네가 벌써 아빠덩치를 따라오려고 한단 말이냐. 놀랍고, 경이롭고, 설렌다. 네가 남자가 된 느낌이 훅 끼쳐온다. 나중에 이 오묘한 느낌을 추억하면 좋을 것 같아 지금 떠오른 생각을 조금 남겨놓으마. 

 

아빠는 원래 작은사람이었어. 할아버지도

아빠가 손이랑 발이 좀 작아. 어깨도 좁고. 그런데 너희 할아버지도 그러셨어. 모든 게 다 작으셨던 분이야. 아빠가 할아버지보다 키가 15센티는 더 클 텐데도 손 하고 발은 유독 할아버지 닮았는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작아. 아빠는 그게 나쁘지 않더라. 할아버지랑 아빠랑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거든. 어쨌든 아빠는 할아버지의 유전자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 지금껏 커온 거니까, 할아버지의 물리적, 정서적 영향이 아빠인생에 많이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해.

 

할아버지가 옛날에 학교앞에서 팥빵, 크림빵을 만들어 파셨더랬어.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산더미같이 크림을 만들어 놓은 솥단지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나.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처럼 작은 손으로 고모, 큰아빠, 아빠 셋을 다 키우셨으니 참 억척스러운 분이셨지. 작은 만큼 섬세하셨기에, 빵도 만들고, 수제 양복도 만들고, 손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하셨더랬어. 물론 나중에는 공사장에서 막노동도 하셨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힘들게 사셨던 분이야. 그 작은 손발로 일하시면서 어깨를 맘껏 피시는 상황도 거의 없었던 것 같거든. 그게 덩달아 아빠가 내성적이게 되고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게 된 원인 같기도 해. 아무튼 아빠가 할아버지 삶의 그 고로함에 한몫 한 셈이라 늘 할아버지에 대한 죄송함이 있어. 그건 너희들 잘 키워서 할아버지한테 자랑스럽게 보여드리는 걸로 갚아나가려고 해. 

 

어쨌든, 아빠는 할아버지의 작고 섬세한 손, 발을 물려받은 덕에, 지금껏 엄청난 이점을 누리고 살아온것 같아. 아빠가 헬기조종을 하게 된 것, 사격을 잘하게 된 것, 축구를 정말 좋아하게 된 것을 보면, 다 이 손과 발에서 나온 재능이 바탕이 된 것 같아. 그래서 너도, 혹시나 손발이 아빠처럼 별로 크지 않게 되더라도, 그만큼 섬세함이 따라갈 테니 너무 서운해 말렴. 그리고 하나 더, 아빠는 너랑 네 동생 앞에서 늘 당당한 모습 보여줄 거니, 손과 발 크기와는 상관없이 든든히 버팀목 역할 하는데 문제는 없을 거야. 절대로 걱정 따위는 하지 마. 소심한 모습은 아빠의 어린 시절로 충분하니까. 그런데 중1인 네가 벌써 아빠랑 크기가 같으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아빠는 니가 더 크길 바라

아빠는 니가 키 185 정도에 건장한 어깨를 가진 남성적인 이미지로 컸으면 좋겠어. 아빠가 어깨가 좁고 손발이 작아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해.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네가 듬직하게 지켜주는 '외적인' 모습도 꼭 보고 싶다. 니 품 안에서 안도하는 여자친구 모습. 상상만 해도 흐뭇할 것 같아. 아빠가 그러지 못해서 괜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니가 큰 덩치만큼 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사람, 곤경에 처한 사람을 지나치면 마음이 불편하고, 도와주지 못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기회가 될 때, 너의 도움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듬직한 고마움으로 스며드는 축복이 있었으면 좋겠다. 직접 보게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네 동생 벌써부터 잘 챙겨주는 널 보면 걱정은 안 들지만, 너도 아직 아빠에게는 어린 아들이기에, 노파심이 쉽게 가실 것 같지는 않구나. 그래도, 아빠는 네가 '크고 넓고 깊은' 사람이 될 거라 기대한다. 기대한다고 말하면 부담이 될까. 그래도 기대가 된다. 아빠가 해보지 못한 큰 사람을 너에게서 느낀다면 아빠로서 참 감격스러울 것 같다. 

 

한참 뒤의 일일테라 생각나는데로 써보지만, 요즘 부쩍 너에게서 남자의 향기가 나는 걸 보니, 그날이 훅 하고 와버릴 것 같기도 하네. 완전히 그렇게 되기 전에 아직은 여리고 작은 너를 아빠가 많이 보듬고 안아주고 같이 껴안아 줄게. 너무 빨리 커버리지는 마. 눈과 마음속에 좀 더 담아두게. 

 

니 손과 발은 아빠랑 크기가 같지만 그 손과 발로 니가 경험하고 이루어나갈 것들은 무궁무진할 거다. 그러니, 작고 큼의 문제가 아니라, 섬세함과 어루만짐으로 니 그 손발 잘 써주려무나. 아들바보 한번 돼 보게. 

 

늘 고맙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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