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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이야기

[아들아빠 diary] 밑빠진 독이라도 물을 채워야 한다

by 꿀팁 MOARA 2023.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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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새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 하고도 한주가 다 가고 2월 둘째 주가 시작된다. 오늘은 밑 빠진 독에도 물을 부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들었던 라디오 방송이 생각나서 너한테 그 얘기를 전해주고 싶다. 이제 갓 중학교 입학을 앞둔 네가 혹여나 공부든 친구관계든 처음 접하는 환경에서 좌절하게 되는 상황이 왔을 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밑빠진 독
밑빠진 독에 물 부어도 될까?

 

몸과 마음이 노곤하다가 문득 안달이 났다

오늘은 아빠도 운동을 한참하고 니 동생이랑 4시간이나 지하철을 타고 왔더니 몸이 지쳤는지 저녁 먹고 그저 너희들 틈에서 TV를 보며 웃고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빠가 이렇게 편하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가 하는 미안함이 살짝 들었다. 한사람은, 네가 엄마 아빠 중 한 사람은 그냥 편하게 주말 오후를 보내는 모습 말고 작은 거라도 꾸준히 계획해서 하나하나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혹시나 무언가에 집중해서 노력하고 성취하더라도 그 도취감에 너무 오래 머물러선 안되는 거라 생각하거든. 왜냐고? 아직 해낸거보다 해야 할게 많으니까. 아빠도 산날보다 살날이 더 많이 남았고, 너희들 늠름하게 독립할 때까지 든든하게 뒤를 받쳐줘야 하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또 마음이 괜히 안달이 나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다. 아직 아빠 연습이 제대로 안된 거라 생각하고 넘어가주렴. 

 

새로운 환경 본격적인 공부

이제 중학생이 될 니가 맞닥뜨릴 환경이 어떠리라 확답은 못하겠다. 아빠가 수십 년 전에 공부하던 환경이랑 지금은 천지차이일 테니까. 아빠는 그저 아침 일찍 학교 가서 1교시 시작하기 전에 교복 입은 채로 친구들이랑 축구하다가 수업시간에 졸다가, 3교시 끝나면 도시락 까먹고 4교시 끝나자마자 바로 축구하고, 또 수업시간에 졸다가 수업 끝나면 축구하다가 해 지면 더 못 놀아서 아쉬워하며 집에 갔거든. 집에 가면 교복에 꾀죄죄한 냄새와 얼룩이 묻어있어서 늘 혼나곤 했지만 아빠 나름은 남자의 향기라며 흡족해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너한테 이런 소리 하면 무슨 외계에서 왔냐 하겠지? 그런데 아빠 때는 그랬다. 지금 환경에서 그렇게 놀다가는 당장 아빠 같은 친구랑은 놀지 말라고 혼나겠지. 그만큼 어려서부터 각종 운동, 학원, 미술 등 각종 특기를 부모님의 계획아래 차근차근 채워나가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아빠는 그저 아빠 때가 참 좋았었구나 하는 생각과 네가 앞으로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마음에 겹친다. 

너는, 아마 중학생이 된 너는, 예전보다 공부양은 두 배이상 늘고, 잠잘 시간은 줄고, 주말에 편하게 지낼 시간은 거의 없을 거고, 순위를 매기는 시험을 처음 접하게 될 거다. 줄 세우기라는 새로운 환경을 처음 접하게 될 너는 아마 많이 혼란스러울 거다. 열심히 했는데 생각보다 '결과'라는 놈이 너의 의지대로 따라와 주지 않아서 화가 나거나 좌절감이 들기도 할 거다. 이럴 거면 내가 계속 이렇게 무의미한 일에, 밑 빠진 독에 너의 시간과 신경을 다 쏟아부어야 하냐는 회의감이 들기도 할꺼다. 그렇더라도, 아무 의미없이 보이는 공부일지라도, 

 

'그렇더라도, 밑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부었으면 좋겠다'

 

왜냐고?

끝없이 니 인생의 독에 시간과 노력을 채워도 그 깊고 어두운 인생이라는 독 안은 너한테는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네가 갈아 넣고 있는 것이 대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불안하기도 할 거다. 기껏 노력했는데 성과가 안 보여서 내가 이걸 대체 왜 하나 싶은 날이 많을 거다. 그래도 말이다. 그 답답함이, 그 불안함이, 그 누적된 스트레스받는 노력의 덩어리가 덕지덕지 니 인생의 독 밑바닥을 찐득하게 채워주고 있을 거라고 믿으렴. 아빠가 겪어보기로 인생 독은 정말 깊고 넘고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더라. 눈에 보이려면 뭐라도 마구 집어넣어야 하더라. 시간이 아주아주 많이 지나서 뭐가 보이길래 봤더니, 다 '땀, 긴장, 끙끙' 이런 단어들로 시작되는 것들만 잔뜩 들어있더라. 그런데 그런 것들이 밑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이제는 아빠가 진짜 채워 넣어보고 싶은 것들을 디자인해 볼 수 있겠더라. 예를 들자면, 좋은 아빠 되기, 친구같은 아빠되기, 어려운 책 읽고 세상 이해해 보기, 너희 할머니한테 좋은 아들 되기 뭐 이런 거 말이다. 

세상에 천재로 태어나서 조금만 노력해도 각광받는 그런 애들은 어차피 우리 부류가 아니니 제쳐놓고, 니 두 손과 두발과 머리로 직접 하나하나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차곡차곡 던져 넣다 보면 니 안에 '견디는 경험, 실패해도 일어나는 경험, 그리고 그중 간간히 힘든 걸 이겨내고 무언갈 성취하는 경험' 등등이 실타래처럼 끈끈하게 뭉쳐서 니 독 밑바닥이 단단하게 채워질 거라 믿으렴. 아빠가 알기로 이렇게 우당탕탕 깨져보고 부딪쳐보는 것 말고 성장하는 길은 없다. 아빠가 누구보다 많이 넘어져봐서 이건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다. 이것마저 안 하면, 인생 독 밑바닥은 점점 더 얇아지고 닳아서 더 깊어지는 것 같더라. 뭐든 채워 넣어야 하더라.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는 방법 

 

밑빠진 독
밑빠진독에 물 붓는 방법, 힘들꺼다

대체 뭘 해야 하냐고? 아빠가 우연히 들은 라디오 방송에서 누가 밑빠진 독에 물 채우는 기막힌 답을 알려주더라. 

 

'물이 새어나가는 속도보다 물을 채우는 속도가 빠르면 밑빠진 독에도 물이 찬다'

 

정말 기가 막힌 표현 아니니? 아빠 이 말 듣고 한참 머릿속이 빙빙 돌더라. 언젠가부터 어렵고 귀찮고 시간이 많이 드는, 하지만 아빠가 꼭 해야 하는 공부와 노력을 멀리하려고 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는데, 이 말 듣고 나니 아빠 독 밑바닥에 언제부터 다시 구멍이 난 기분이 들더라. 다시 채워 넣으려면 빠진 밑의 크기보다 더 가치 있는, 그리고 그만큼 힘든 일을 어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한테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자면, 너는 딱 니 앞에 놓인 답답하지만 긴 공부라는 여정 하나만 보고 걸어가면 우선은 되지 않을까 한다. 너 원래 스트레스 엄청 잘 받으니까 엄청 수압이 높을 거고, 그래서 물독도 엄청 빨리 채워질 거다. 다만, 

 

'멈추는 순간 정말 니 밑바닥이 휑하니 보여 너무 힘들 거다'

 

아빠는 부디 네가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면 한다. 너무 힘들겠지, 당장 니 앞에 뭐가 놓여있을지 보이지도 않는데, 어두운 바닷속을 선글라스 끼고 헤엄치는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팔과 다리를 젓지 않으면 100%의 확률로 가라앉는다. 의미 없는 자맥질이라도 어디로든 가보는 게 어둠의 바다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걸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아빠가 앞에서 헤엄쳐가는 걸 보여주려고 노력은 한다만, 많이 못 미더울 거다. 아빠한테 배우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서툴러 보여도 쉬지 않고 막 헤엄쳐나가는 그 모습, 자세 말고 팔다리를 움직이는 그 모습 자체다. 아빠가 앞에서 만들어낸 파동이라도 네가 느끼고 따라올 수 있도록 열심히 저어보마.

 

힘들겠지만,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잘못가도 된다. 강물은 굽이굽이 돌아서 결국은 다 바다로 가거든.

 

'너도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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