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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이야기

[아들 아빠 diary] 지하철 24개 역 이름 순서대로 다 외우는 아이_자립심 키우기

by 꿀팁 MOARA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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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7. 토요일. 흐림(간밤에 눈 5cm 와서 진창길)

지하철을 정말 좋아하는 우리 아들과 토요일 일요일 꼭 한 번씩은 원하는 역에 같이 가주고 근처 맛집도 찾아가 주고 있는데, 이제 아들은 정기행사가 되어버린 아빠와 지하철 타기를 일주일 내내 기다립니다. 심지어 이번주는 지하철역 24개 정거장을 순서대로 다 외워버렸습니다. 그저 거기에 가려고요. 새해 들어서는 아이 자립심도 키우고 공짜로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 일주일간 규칙을 지켜야 데려가는 것으로 아이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데, 뜻밖에 아이의 집중력과 어리지만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의 잠재성을 언뜻 발견하게 된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번 주말 아이와 지하철 투어하면서 적용해본 아이 좋은 습관 들이기 내용 공유해 봅니다.



1. 원하는 목적지 스스로 정하기

매주 월요일이 되면 아이에게 이번 주말은 어디를 가고 싶은지 직접 정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냉장고에 붙여놓은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열심히 이곳저곳 찾기 시작합니다. 최대한 멀리 가기 위해서 집에서 먼 쪽을 찾던 아이는 잠시 후, 맙소사, 경마공원역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집에서 한 시간은 좋게 걸리는 거리를 스스럼없이 정해놓고 폐 심의 미소를 띱니다. 미세먼지주의보가 내린 이날, 이렇게 장거리를 정말 가야 하나 와이프 눈치를 보다가, 일주일 내내 기다린 아이의 희망을 꺾으면 후폭풍(?)이 더 거세질 것 같아 그냥 지르기로 합니다. 


2. 원하는걸 가지기 위한 목표 설정하기

하지만 원한다고 그냥 막 데려다주면 아이한테도 저한테도 그냥 일상적인 물리적 이동 외에 남는게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하철과 연관된 미션 수행하기가 없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이렇게 적용해 보기로 합니다. 

아빠 : 그래? 알았어 그럼 우리집에서 경마공원까지 어떻게 가는지 다 외워봐.

아들 : 네? 그걸 어떻게 해요?

 

아빠 : 그거 못쓰면 지.하.철.없.어. 

 

아들 : ....

 

아빠 : 너 지하철 역이름 좋아하잖아~집에서 그다음, 그다음 역 이름 쓰고 외우면 금방이야~다 외우면 갈 거야, 못 외우면 외운데 까지만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너무 매정한거 아닌가 순간 고민했지만, 처음에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들어 질 것을 직감했기에 그냥 밀고나가기로 합니다. 표정도 진지하게, 정색하면서 한참을 쳐다봤더니, 제가 한 고집 하는 걸 아는 아이라 떼써봤자 소용없다는 걸 익히 눈치채고는, 한참 죽상을 쓰던 아이는 그때부터 틈만 나면 냉장고에 붙여놓은 A3 지하철 노선도 앞에 서서 뚫어져라 보다가, 중얼중얼하다가 한숨도 쉬다가.. 저를 원망의 눈빛으로 쳐다보다가(이때도 귀여움) 자기만의 방식으로 암기를 시작합니다. 지금껏 원하는 건 그냥 엄마아빠가 다 해주는 줄 알고 있던 아이가 이제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자기도 끙끙대며 무언갈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고, 싫어도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서 부딪치고, 그러면서 작은 것이라도 성취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아이에게 좋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했던 의도였는데, 생각 외로 이게 잘 먹힌 것 같습니다. 금요일에 퇴근을 했는데 아이가 벌써 저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습니다. 득의양양해져 있는 것이죠. 조그만 녀석이 눈빛이 왜이리 음흉해 보이나 했더니, 다 꿍꿍이가 있는것 같습니다. 

아빠, 내일 일정 잊은 거 아니지?

 

이런 무언의 눈빛 레이저를 날리는 것이지요. 이때다 싶어 넌지시 확인에 들어갑니다.

 

아빠 : 아들, 너 다 외웠어? 집에서 어떻게 가는지 얘기해 봐.

그리고 증거를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이럴 수가!!! 아이가 장장 24개 정거장의 이름을 읊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순서대로..


지하철 역 이름 다 외우는 예비 초3 아들 클라스!


아.. 잠시 당황했습니다. 우리 아이 집중(거의 집착)력이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에 놀랍기도 하고 기쁘면서도 걱정도 되는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그래도 어디 하나에 꽂혀서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깡다구는 있어 보입니다. 다행인 거겠지요?


3. 약속한 건 꼭 지켜주기

제깐에는 힘들어 보이는 걸 해냈으니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은 확실히 해줘야겠지요? 두말없이 아이를 데리고 뭐 지하철역으로 향합니다. 간밤에 눈이 엄청 내려서 길이 질척 질척한데도 아이는 그저 신나라 물 웅덩이에 일부러 발을 담그고, 바지는 다 젖고, 그러면서도 신이 나는지 흥얼흥얼 거리며 알아서 잘 찾아갑니다. 왜 아이들은 제 몸 버려가며 노는걸 그렇게 좋아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됩니다. 파괴본능일까요? 아이가 원하는 것은 주도적으로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지하철 타는 곳, 환승하는 곳도 알려주지 않고 저는 그저 뒤에서 따라다니기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길을 몰라 헤맬 때 저를 돌아보고, 그럴 때만 길 찾는 방법을 알려주고, 다음부터는 아이가 고민해서 찾을 수 있도록 똑같은 건 알려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아이가 힘들어하는 순간을 눈 질끈 감고 외면해야 할 때도 있다면
이런 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곳을 알아서 척척 잘 찾아다니니 다행입니다. 간혹 뒤도 안 돌아보고 자기가 원하는 칸에 타고 싶다며 와다다 갑자기 뛰어갈 때는 당황하기도 하지만, 아빠가 언제든 자기를 찾아낼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그러는 것이려니 하고 그냥 놔둡니다. 지하철에 타고나서도 웬만하면 아이의 주변 구경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시간에 근처 맛집을 찾아볼 수 있어 저도 시간을 버니 좋고, 아이도 마음껏 바깥경치나 주변 구경하고, 각자 즐기는 거죠. 힘든 만큼 보상이 크다는 것을 알게 해 주려면 맛있는 음식 재미있는 여행 추억을 많이 만들어줘야 할 것 같아서 가급적이면 아이가 찾아가고 원하는 곳으로 돌아다니게 하고 이것저것 만져보게 하고 자유롭게 풀어놓으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특히 어려운 지하철역 암기를 해냈기 때문에 특별히 맛있는 곳으로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지하철을 즐기고 저는 그런 아이를 즐기고 맛집도 즐기고 일석삼조인 것 같습니다.


4. 목적지 인증과 아이 습관 만들기 적용 후기

아이와 장장 24 정거장을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미세먼지 심해서 목도 칼칼하고 기침하는 막내가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방학인데 변변히 어디 데려가지도 못하는 미안함도 큰 탓에 기어코 다녀왔는데, 너무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간 곳 또 가자고 할까 봐 같은 목적지는 안된다고 하려고요. 그래서 다녀간 곳은 이렇게 인증숏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경마공원역 기념사진
경마공원 도착 인증샷

겨울방학 계획도 세웠겠다, 마침 가고 싶어 하는 지하철역은 20군데 넘게 있는 것 같고, 이참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뭔가 해야 쟁취할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거다'라는 어쩌면 당연한 삶의 진리를 실전으로 배양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 다음 주 목적지는 환승을 해야 하는 곳으로 잡아서 좀 더 어려운 코스로 잡아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집에서 멀어질 수록, 아이의 요구가 큰 것일수록 해야하는 과제도 많게 해서 갖고자 하는 목표의 크기만큼 어려움도 같이 온다는 것을 아이가 간접적으로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방학이라 이때 아니면 아이들과 추억 쌓을 시간이 없는데, 우리 이웃님들은 어떻게 아이들과 보내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모쪼록 먼 훗날 돌아봤을때 아이와 같이 키득거리며 웃음지을 수 있는 좋은추억 많이 만드시고, 좋은 팁 있으면 공유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만 다음 역 어디갈찌 두리번 거리는 아이 괴롭히러 이만~

 

막.즐.기.세.요.아.이.는.언.제.우.리.곁.을.떠.나.버.릴.지.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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