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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팁이야기

[2022년 활동 정산-1] 10년 만에 겨우 끝낸 박사 학위, 여기 뛰어드실 분 이건 알고 시작하시자.

by 꿀팁 MOARA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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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을 마무리하며 아주 부끄러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고 추억에 남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모지리의 2022의 박사학위 마무리 기록입니다. 혹시 저처럼 일하시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좀 더 얻고자 공부에도 목표를 두고 시작을 고민하시는 분이 있다면 조금 도움이 될까 하여 가감 없이 소회를 기록해 보니 괜한 곡해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박사학위 시작, 때는 바야흐로 10년 전으로

다니던 직장에서 지원을 해주는 덕에, 주변에서 꽤 많이 도전을 하고 있던 터라, 입사 후 딱 10년이 되던 2013년에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30대 초반, 첫째아이 5살이던 그때, 아직 혈기왕성하던 때라 일도 열심히, 술도 열심히, 뭐든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평소에 정말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던 저도 일단 지르기로 결심하게 된 거죠. 특히 파트타임(직장 다니면서 주중, 주말에 수업 듣는 학위과정을 흔히 이렇게들 부릅니다.)에 대한 배려가 좋았던 학교라 그럭저럭 코스웍은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만히 봤다가 큰 코 다쳐 휴학을 6년이나 하다

코스웍은 무난히 마쳤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써야 하는 상황. 대충 하지도 그렇다고 엄청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한 코스웍의 끝 마무리 무렵, 선배들의 논문 예비, 공개발표를 듣고서는 말 그대로 충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심사하는 교수님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학생의 디펜스(질문에 대한 답변을 흔히 이렇게 부릅니다.)는 흡사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았고, 제가 거기 서있는다면 멍하게 있다 그냥 쫓겨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약 없는 휴학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래, 일도 바쁜데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보지 뭐

 

사실은 어디서부터 뭘 해야할지 하나도 감을 잡지 못하던 저의 비겁한 휴학 핑계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라는 무덤 속에 나의 게으름을 심어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어언 2023년, 입학 후 10년이나 지나면서 마음 한편에서 계속 신경을 건드리는 이것을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연구학기를 등록하기로 결심합니다.(통상 코스웍 수료 후 연구학기 2개 학기를 등록하고 논문이 통과되면 총 6학기로 학위과정이 마무리됩니다.) 그렇게 6년간 잠들어 있던 제 심연의 스트레스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악몽

주제선정, 논문구성, 논리전개..모든게 생소하게만 느껴져 유사논문을 영혼 없이 보던 중, 일도 공부도 가족생활도 다 피폐해져 가고 간간히 밤에 악몽도 꿉니다. 그렇게 피로감에 시달린 지 한 달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하게 일단 글을 써내려 가기로 하고, 제 주제와 가장 구성이 유사한 논문 몇 개의 형식을 빌어 목차별로 차근히 자료를 정리해 나갔습니다. 당연히 쉬운 부분부터요. 그렇게 2달쯤 쓰고 나니 이제 논문의 핵심인 통계분석을 맞닥뜨리게 됩니다.(사회과학 기준 설명이니 통상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냥 가볍게 넘어가주세요) 여기선 정말 태풍 치는 날 절벽 끝에 딱 서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1+1은 2가 아니니 왜 아닌지 설명해보라"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기분 딱 그런 느낌입니다. 학사, 석사를 다 인문계열로 마친 터라 더욱 생소했었죠. 그렇게 새벽까지 끙끙대다 결국 지우고 후퇴하는 보름여가 지나갑니다. 대략 이런 글을 지우고 쓰고를 반복합니다. 

 

박사논문 습작
논문아이디어 연구흔적

 

모르겠다. 들이밀자 

지도교수님께 부탁해서 통계처리를 도와줄 대학원생을 소개받고 코칭을 받았습니다. 책도 사고, 유투브 설명도 듣고, 개인 과외 해준다는 대학원생과 상담도 하고, 이것저것 마구 부딪칩니다.  이때 정말 3개월간 하루에 3시간 정도 잔 것 같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때는 새벽 4시쯤 그동안 하던 것 다 지웠을 때,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땐 정말 자존감이 바닥을 치더라고요. 

 

궁하니 나타나더라, 한줄기 빛

그렇게 진도가 3개월 정도 정체되던 때, 학위를 마친 선배에게 들은 조언에 뒤통수를 쎄게 맞은듯한 충격을 받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논문을 쓸 게 아니라면, 지금까지 노력한 범위 내에서 정리를 해 계속 벌리지만 말고."

 

그랬습니다. 언젠가부터 제 논문이 빈틈없이 완벽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 봤던 공개발표 시간의 두려움이 은연중에 남아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쓰던 글을 내려놓고 찬찬히 다른 논문들을 보니, 말 그대로 다양한 범위로 자신만의 주장을 펼친 사람도 많더라고요. 이때부터 제 주장의 범위를 정해놓고 미사여구 다 떼고 하고 싶은 핵심만 정리를 해나갔습니다. 살을 뺐더니 그제야 내가 하는 말을 내가 알아듣겠더라고요. 문제는 내 안에 있었던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때부터 쉽게 끝냈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욕심을 내려놓았더니 의미가 더 명확해지고 이해가 잘 되더라는 거죠. 


이제 실전이다

그렇게 작성한 논문 초안을 지도교수님과 수차례 수정하고 조정한 뒤, 예비발표, 공개발표를 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훨씬 떨려 식은땀이 났지만, 그동안 고생하고 고민했던 게 축적이 됐는지, 겨우겨우 통과를 하게 되고, 본심을 위해 다듬고 다듬고를 반복하게 됩니다. 준비할때는 몰랐는데, 막상 초안을 완성하고 나니, 산고 끝에 낳은 아이(그냥 표현이 그렇다는 겁니다.)에 대한 애착처럼 한 줄 한 줄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교수님들의 질문에 대한 예상질의답변을 준비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힘들었지만, 통과했다.

그렇게 예비발표, 공개발표, 본심3심(초심, 중심, 종심)을 꾸역꾸역 마치고(물론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다른 다른 원우님과 교수님께 도움을 받아 가면서) 12월 마지막 주에 논문 인쇄를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제출심사가 통과되었다는 메일을 보는 순간, 긴장이 탁 풀어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박사학위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가

마침 주변의 추천으로 읽고 있던 Say No 라는 책에서 고학력과 부자의 관계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한 부분이 있어 인용을 해봅니다. 결론적으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웬만하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중략) 그렇다면 제도권 내에서 공부를 "오래 하는 것", 즉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마치거나 박사 학위까지 얻는 고학력은 부자가 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중략)...한국에서도 경제적 시간적 투자 측면에서 볼 때 대학을 안 가는 것이 오히려 좋을 사람들이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또는 자존심이나 얼어 죽을 체면 비슷한 것 때문에, 또는 대학에 가면 뭐 특별한 것이라도 배우게 되는 줄로 오해하여, 또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혹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아마도 이게 가장 클 것 같다), 기 쓰고 대학을 가는 경우를 나는 종종 본다....(중략)... 그러다 보니 한국의 10개 대학 중 9개소는 대학원을 운영한다. 똑 같은 학력 중시 사회인 일본만 하더라도 10개 중 3개소 정도만 대학원을 운영한다...(중략)... 취직이 목적이라면 어중간한 대학원에는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좋으며 그런 곳에서 학위를 받는 것은 적어도 부자가 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물론 다녔던 바로 그 대학에서 강사 자리를 얻고 그 대학의 교수 자리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지저분한 짓을 좀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중간한 대학원도 당사자가 이미 학력, 학벌 위주 집단에 취업하여 일을 하고 있는 중이거나 혹은 공무원이 좀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고자 할 때에는 도움이 된다. 반면에 전직을 하고자 대학원을 다닌다면 정말 최고로 유명한 곳에 젊었을 때 다니는 것이 좋다...(중략)...어쨌든 박사학위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나 투자 가치가 있을까? 딱 잘라 말해서 큰 도움은 안 된다...(중략)...그러나 박사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나 연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부수적으로 얻는 것이 학위이어야지 학위 자체가 목표라면 잘못된 것이다...(중략)... 결론 :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보다 공부를 상대적으로 "아주 잘하며", 전공이 "돈 버는 것"과 관련되어 있고, 나이가 많지 않다면 고학력을 추구한 대가를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투자대가를 경제적으로 크게 기대하지는 말아라.  
출처 : say no 다음카페 세이노의 가르침

정말 진리탐구에 진심이신 대부분의 학자분들의 경우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의 경우 너무나 부족한 자질로 인해 애초에 경제적인 관점에서 학위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생각했던 내용을 말씀드리다 보니 위 인용을 하게 됩니다.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려면 그에 맞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데, 제가 이 과정을 계속하려면 너무나 많은 명분과 실리와 아무튼 엄청 중요한 가치가 필요했거든요.  

 

하고싶은 말

애초에 박사학위를 시작할 때 멋모르고 덤벼든 것이 많은 길을 돌아오게 된 거라 안 좋다 생각했는데, 이제 돌이켜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저처럼 공부에 취미가 없는 분들은, 인생에서 한 번은 어떤 영역의 끝까지 올라가 보고픈 목표하나쯤 세워놓고 도전해 보고자 할 때, 가끔은 무모한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더 고민하고 이 과정의 실상을 알았다면 아마 십중팔구 시작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정말 뜻하지 않은 곳에서 해결책은 나오고, 그 아래 내가 노력한 흔적만 차곡차곡 쌓여있다면, 어떤 일이든 이뤄낼 수 있다는 귀중한 경험을 얻은게 가장 큰 성과 같습니다. 정말로 연구에 진심이신 분들을 이번에 경험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의 한 축은 이런 학문적 연구를 통해 지탱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각자 본인의 상황에 맞게 진심인 부분이 있다면, 거기가 우리의 박사과정인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살아가면서 본업에 도움이 될 많은 공부를 하게되어 힘들었지만 뜻깊었던 시간이었고, 이번 경험을 저의 커리어에도, 앞으로 살아가며 맞닥뜨릴 많은 난제적 상황에서도 다 적용해서 이제는 문제해결의 수준을 좀 더 높이는 내공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어찌 됐든, 꼬박 1년을 하나의 주제에만 몰두해 보니, 깊은 이해가 무엇인지 색다르게 다가오긴 하더라고요.

 

그리고 깨달은 중요한거, 진짜 고수는 어려운 것을 쉽게 정리하는 사람입니다. 

 

어쨌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런 목표달성을 이루게 되어 나 자신을 격려해야, 다시 다른 박사스러운 곳으로 뛰어들 수 있겠기에, 부끄럽지만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이웃님들 각자 계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한 분 한 분이 그곳의 박사이십니다. 더 도전해 보자고요!

 

저. 같. 은. 사. 람. 도. 합.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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